짙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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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섹스하는 꿈 夢留記

애인이 있었다. 섹스를 했다.
섹스도 섹스였지만 기분이 좀 좋았고 약간 비현실적이었다.
아마 내가 여성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해변에서 반라의 사내아이들이 무언가 무거운 것을 이끈 꿈 夢留記

여러 가지 있었지만 기억나는 부분만 말하자면.
일본이나 한국으로 보이는 해변에서 흙투성이의 건장한 소년 여러 명이 바다를 등지고 밧줄로 무언가를 잡아끌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는 검었고 일제히 위로 묶어올린 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색이 강했던 것 같다. 걸치고 있던 천도 붉은 훈도시 같았고 그 상투(?)도 옛 일본식의 그것 같았다.
아마 그것은 일종의 노동단체였던 것 같다. 내가 방관자의 입장이었는지 아니면 나도 그 사내아이 중 하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일이 끝나고 근처의 시장터(?)에서 모일 때는 확실히 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쯤 되니 전의 일색은 사라지고 배경은 완전히 한국처럼 되어있었다.
그 전후사정은 잘 기억나지 않고 땀으로 반짝거리는 그 구릿빛 피부들과 그 힘겨움은 나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온 꿈 夢留記

장소는 어딘지 모르지만 어쨌든 몽펠리에(내가 지금 있는 프랑스의 남부 도시)였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 위까지 올라갔다. 나무가 우거지고 날씨도 좋았다. (실제로도 거의 매일 날씨가 좋지만.)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이별이 불가능한 세상

우리는 이별이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상의 어디에 있더라도 간단히 서로와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별이라기보다는 점점 멀어진다는 표현이 더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異世界를 바탕으로 한)만화나 애니 등의 매체에서 질리게 우려먹는 이별이라는 소재가 번번히 나의 기분을 멜랑꼴리하게 만들어 놓는데, 가령 이세계로 소환됐던 주인공이 현실로 돌아간다던가든지 말이다. 설령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이어진다는 식의 완결이라도, 실은 완결이란 것이 등장인물과 독자들의 이별이기에 아주 상투적인 마무리라도 찡한 감정을 남기고 만다. 그저 내가 유치해서일수도 있다.
현실세계에서 이정도로 절대적인 이별은 사별 정도리라. 그런데 그건 찡하다기보다는 무섭다.

2009/7/28의 꿈 夢留記

나는 동생(?)과 추리 드라마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추리 드라마는 평소에 전혀 보지 않으며 꿈에 등장하는 것들은 전부다 가상의 작품들이었다. 어쨌든 내가 촬영 기술 등의 부재로 인해 어떠한 연도 이전에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었다고 말하자(?) 동생은 더 전에도 추리드라마가 있었으며 촬영 기술이 부족하진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그것은 관념적인 차이이다. 초기에도 추리드라마는 단지 죄수가 감옥에 갇혀있는 것 만을 보여준다. 그것은 내면적인 것이며 정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탐정 등이 죄수를 쫓는 더 정적이고 활극적인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 전후에도 뭔가 많은 것이 있었던 듯한 기분이 드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로 선명히 기억나는 시점부터 상설하겠다. 나는 어딘가로 수련회? 연수회? 비슷한 것을 와 있다. 학생들과 함께인데 알지 못하는 얼굴들이다.사실 이 기억나는 부분부터 수련회나 캠프의 형태를 띠었던 것 같고 그 전에는 뭔가 다른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다만 장소는 같은 곳이었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건물에서 수련회가 이루어진다. 이 건물의 옥상에서 뭔가 거대한 생명체가 울부짖는 듯한 모습을 본다. 그 때 나는 저것이 최초로 해저에서 올라와 상륙에 성공한 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과서는 잘못되었다. 작은 물고기가 아니라 저런 어엿한 생물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육지진출이라는 그 새로운 역사를 기리기 위해 포효하고 있다. 2층의 가로로 긴 하얀 건물이 있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으로 올라갈 때는 하늘빛이 어두워질 즈음으로 아마 오후7~9시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는 2층의 우측 방을 연다. 창문이 열려 있고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빈 방이다. 나는 '여기에서 조용하게 (휴가를) 보내도 괜찮겠네. 조금이지만 바다도 보이고' 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창문을 통해서는 바다가 보인다. 산? 건물? 인가에 의해서 가려져 있는데 어쨌든 바다 한 조각이 파아랗게 보인다. 그 방은 아직 어둡지는 않고 저녁때 정도의 명도가 감싸고 있는데 나는 불을 켜보고 꺼보기도 한다. 나는 그 방의 고요하고 휴가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그 다음에 나는 좌측의 방으로 간다. 좌측의 방은 좀더 열린 분위기로 마치 평평한 작은 강당처럼 의자가 한 3열정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큰 건 아니고 보통 집의 거실 정도인데 불이 켜져 있어서 밝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자가 3열이나 있는데 그렇게 좁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벽이나 의자 등도 하얗다. 하얗다는게 무슨 정신병원처럼 새하얀 건 아니고 상쾌할 정도의 백색이다. 맨 뒤의 최우측에 앉아 주변에 있는 책을 읽었는데 이원복 교수가 쓴 '유럽만사 세상만사'(자기 전에 읽고 있었던 책)이다. 대충 읽고 만다.
그리고 이 건물에 오기 전에 보았던 그러한 어떤 학술적인 것을 찾기 위해 베란다 쪽으로 나간다.
구석에서 나는 목마 비슷한 장난감을 본다. 책보다 조금 큰 나무 판때기에 네 개의 목륜과 말의 머리를 깎아내 붙였다. 고대인들도 말에 대하여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남자 선생님과 여자 선생님이 날 부른다. 그 여자 선생님은 전에도 날 부른 적이 있어서 '말을 몇 번 해야 들어'같은 식의 가벼운 힐난을 한다. 사실 난 거실에는 그 만화책밖에 없으니까 이런 것을 보러 베란다에 나온 것 뿐인데. 어쨌든 다시 거실로 들어가서 앉기로 한다.
실크 비슷한 재질의 토가 비슷한 옷을 걸친 알몸에 가까운 약간 긴 백발의 중년이 뭔가 움직이며 뭔가 강의를 한다.

1895년의 코카콜라 광고




당시엔 상류층의 음료 정도로 인식되었던 것인지.
백년이 넘도록 불변하는 상표가 눈에 띤다.
빅토리아풍 의상의 모델은 힐다 클라크(Hilda Clark)라는 여우. 이 광고 이후로 그는 코카콜라의 간판모델이 된다.
하단의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ome Office (본사)
The Coca-Cola Co. (코카콜라社)
Atlanta, GA. (조지아州 아틀란타)
Branches: Chicago, Philadelphia, Los Angeles, Dallas(지점: 시카고, 필라델피아, LA, 댈러스)

출처는 영문 위키백과.

2009/07/24~25 사이의 꿈 夢留記

여러 꿈이 있었지만 마지막 것만 기억이 난다.

 

일단 내가 어느 회사에 입사하는 내용이었다. 이것저것 인터뷰를 했는데 나는 이제까지 한 내 봉사활동 내역이라던가 관심사, 번역 알바 같은 것을 예로 들며 자신있게 스스로의 이력과 업무 적합성을 표현했다. 면접관은 여자 한 명이었고 밝은 방에서 테이블 하나를 두고 이루어졌던 것 같은데 꽤 일상적이고 편한 분위기였고 의외로 순조로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이 꿈은 약간 일관성이 부족한데 면접 후 어느 곳에 나가려고 했다. 밖에서 내가 할 무슨 일이 있었던것 같은데 그 일이 내 입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꼼꼼히 준비했지만 막상 나가려고 보니 군복(!)이 없었다. 왜 군복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군복을 맡겨둔 세탁소(!)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세탁집 아저씨는 화가 나 있는 듯 짜증만 냈다.

이 순간부터 갑작스레 짧은 나레이션이었는데 '그리하여 왕 제임스 1세는 당연히 파문되어 미친 채로 두 딸에 의지하며 여생을 보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사실 나는 제임스 1세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영국 왕이라는 사실밖에는. 만화 형식이었는데 아마 집에 굴러다니던 먼나라 이웃나라를 최근 읽어서 그런 듯 하다.

이 외에도 여러 줄거리가 있었고 그 줄거리가 상기한 내용과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 그리고 도중에 내가 콧수염을 깎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말하면 전부가 아니라 양 옆의 부분이다. 근데 아주 빡빡, 매끈해질 정도로 밀어서 좀 따끔거리며 아팠다.


한자어와 토박이말

'차이'라 해야 할까, '다름'이라 해야 할까? 나의 졸견은 이러하다. 둘 다 써야 한다. 한자어든 토박이말이든 국어의 일부이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순화되거나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어에서 온 영단어 'difference'를 '순'영단어인 'unlikeness'로 순화하지는 않는다. 양익(兩翼) 모두 한국어를 풍부하게 하는 원천이다.


가사

2009/07/14

근래 느끼는 것은 이제까지 나의 삶은 단지 다소의 통행료라는 것.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는 본격적인 대로에 진입했냐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2009/7/10 夢留記

꿈1
처음에는, 내가 봉사활동을 다니는 육아원에 있었다. 많이는 기억 안 난다. 하나 기억나는 건, 그곳의 원생이 보육사에게 그 시설의 뭔가를 팔아서 뭔가를 사먹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궁핍하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보육사가 그렇게 뭘 사먹으려고 그런 걸 팔아치우면 끝이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걸 사먹기 위해 그런 걸 팔아치우는 일을 한다면 그 일회성이 좀 슬픈 느낌이리라고 생각했다. 

꿈2.
꿈1과 이어져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어쨌든 이번에는 다시 학교다.
요즘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있는 꿈을 자주 꾼다. 대개는 시험기간이다.
이번에는 고3 초기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든 다시 잘할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 약간 있었던 것 같다.
('다시'라고 함은 내가 그게 반복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인물들은 대체로 똑같았는데 배경은 많이 달랐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학교였다.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고, 시험기간이었다. 수학시험을 이틀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 범위는 10-가였다.(3학년인데 왜 10-가?)
물론 공부는 하나도 안한 상태.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일본에 있었다. 그것도 밤에. 여행을 온 것이다. 나중에 꾼 꿈이라 그런가, 이 부분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냥 평범한 밤의 거리고 가게같은 것이 죽 늘어서 있는데 무슨 대도시의 불야성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동네라는 느낌이다. 비행기를 탄다던지 공항에서 전철로 갈아탄다던지 하는 과정은 전혀 없고 어느새 보니까 그런곳에서 걷고 있었다. 어쨌든 다시 일본에 있다는 점이 좀 좋았고, 역시 두번째 오니까 흥분은 좀 덜하구나 하고 스스로 웃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 땅을 좀 걷자마자 내가 시험기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나는 아, 공부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해 근처의 서점에 들어갔다. 서점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서점이었다. 아주머니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들어선지 얼마 안돼 그 아들이 들어왔다. 마르고 골격이 괴이하고 반삭한 머리에 정신이 좀 혼탁한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아주머니가 왜 일본에서 이런 한인서점같은 장사를 하는지 이해가 간다고 생각했다.
참고서, 만화, 소설 등이 있었다. 소설은 괴기소설이 있었는데 섬뜩한 삽화가 많이 그려져 있었다. 개중에는 무슨 괴물같은 것이 아래로 뭔가를 쏟아내는 그런 그림이 있었는데 대충 아래같은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삽화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타카하시 요우스케와 좀 닮은 화풍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좀 흥미롭다고는 느꼈는데 관뒀다. 시리즈물이었는데 이상하게 처음엔 일본어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한국어였다. 그 외에도 만화책이 여러권 있었는데 한국어 번역판이었다. 전에도 한국어판 만화를 팔고있는 데를 일본에서 본 적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 서울 북오프의 기억과 뒤섞인 것 같다. 그떄(전에 일본에서 봤을 때)는 왜 일본에서 저런 걸 사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이해 못할것도 없지않나 싶었다.
 어쨌든 10가(생각해보니 10나가 아니라 10가였다)를 열심히 찾았다. 두꺼운 것도 있었고 얇은 것도 있었는데 이틀밖에 안남았으므로 얇은 것을 사려고 했는데 왠지 좀 그 과정이 혼잡했던 것도 같다. 찾기도 힘들었고 사람도 좀 많았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어떻게 사서 가게를 나서려고 했는데 그 후가 잘 기억이 안난다. 확실한 건 가게를 나서지는 못했던 것 같다.

꿈3
이게 전 꿈과 연관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방과후 학교 비슷한 느낌의 어떤 시설에 있다. 전후과정은 잊었고 어떤 아이가 나의 손을 잡아끈것만 기억난다. 근데 그 손은 밥이 묻은 것처럼 끈적끈적했다. 아마 정신지체아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육사(교사?)들이 그를 돌보고 있었다. 그 외에는 잘 기억 안난다.


한자어인줄 알았지만 비한자어인 단어

1. 대단
大자가 들어가는 한자어라고 추측했는데 실은 아니었다.
2. 생각
生覺인줄 알았다.

한국어에서의 한자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그 위치를 상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일본어의 한자보다는 약하나 영어의 라틴어보다는 높은' 것 같다.
효용면에서 표현하자면, '몰라도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으나, 숙련자가 되려면 필지해야 할' 것 같다.



 

세계어, 영어

영어는 세계어이고 국제 공용어일까?
확실히, 최강의 언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최강대국 미국 3억을 포함한 4억의 모국어이고 사실상 인구 대부분의 제2외국어이다.
그러나 나는, 에스페란토 따위의 구조언어가 아닌 이상, 인류는 국제 공용어를 갖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영어는 국제 공용어가 되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 언어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난, 영어를 '세계인이 쓰는 언어'라기 보다는 '세계인이 모두 배우고 싶어하는 언어'가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은, 그만큼 영어 능력이 개개인에게 '특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9/07/05

시력이 점점 악화되어간다.

明罪光線

淸明한 날은 짜증이 난다.
흐리거나 궂으면 오히려 안심.
맑은 날 햇살에 쬐이며 걸으면, 그것이 나의 죄를 드러내어 비추는 듯 하다. 명죄광선(明罪光線)이다.
견딜 수 없는 聖光을 뒤집어쓴채 족쇄를 끌듯이 걷는다.

번간지쟁(繁簡之爭)

중국의 간자체와 대만의 번(정)자체 간의 논쟁이 뜨겁다 한다. 나는 중국어도 간자체도 모르므로 어느 쪽이 한자권에 유익한지는 잘 모르지만, 요즈음 確知하게 되는건 내가 어느 쪽이 유익하다 판한들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대만-중국史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史的상식으로도 13억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따라가기보다는 그 逆이 그럴싸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상식이라 하면 번간의 우열보다 정치/경제/역사적인 힘이 판을 좌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상식. 결국 識者가 옳다고 부르짖음도 격풍을 미동시키는 바람 한 줄기일 따름이고, 하물며 식자와는 먼 나의 소견이야 오죽하랴.
한글과 한국어의 동일시, 그에 따른 국어의 비혼혈성 崇敬 등 한국어에 불만은 많지만, 결국 내가 대통령도 장관도 아니기에, 나는 사고를 당위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하려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내 흉벽胸壁에 메아리치는 블로그 私錄뿐이지만, 그래도, 삶이 생각하기에 합당하게만 흘러가면 반성 자체가 무슨 쓸모일까? 역설적으로 부조리와 사유는 공존으로서 相關하고 있는게 아니려나.

여담으로, 한글의 엄존과 한자의 무용을 관련짓음은 개인적으로 불가해하다. 한글표기는 일리가 있어도 한자 자체를 부정함은, 표음과 표의가 공존하는 언어에서 一翼을 꺾는 길로 나에게 비친다. 나타냄을 위해 뜻이 사라질 필요가 있는걸까?

한인2세

근래 이따금 보도되는, 한인2세의 성공기를 조금 염려한다. 국민은 피가 아니라 법일 터. '無韓血의 한인'이 점증漸增하는 이 세기에 하인즈 워드에 보내는 찬사가 不知中 일부 국민을 따돌리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아직 해외에서 한인의 힘이 미약하던 시절, 저들의 자녀를 立身시킨 그 노고를 다만 알고자 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외국인의 외국에서의 일화려니.

이룸없는 꿈 夢留記

今夢에도 잡다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거두절미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 남겨두고 있는데 아침에 소파에서 눈을 뜨고 생각해보니 내가 아무 이룸이 없었고, 그런 내가 남은 한달간 무엇을 이루랴 섬뜩하게 깨달았는데, 目前景(거실)이 어찌나 또렷하게 보이는지 마치 禪覺인가 싶었다.
일어나니 열두시였다. 죽고싶다.


국어 로마字 記法에 대한 단상

1. 국어를 롬記할시 難題 중 하나가 ㅕ의 표기일 듯 한데 ㅓ(eo)라는 이미 난해하고 추상적인 記法에 y까지 붙여 yeo를 만드니 국어에 不熟하면 그 표기에 대응하는 모음을 떠올리기 어려움이 사실이다. 곤란하게도 yeo는 꽤 쓸일이 많은듯하다(Pyeongyang, annyeong, Gyeonggido 등). 예시처럼 -ㅇ(-ng)이 붙으면 그것은 이미 한 음절로 보기 어려울 경.
오로지 영어적 관점에서 보자면 yo나 yu로 씀도 凡策의 하나. 허나 알다시피 ㅛ와 ㅠ와의 차별화가 불가하고 오독 확률이 높으니 차선일 뿐이다. 그러나 양자택일하라면 ㅠ보다는 ㅛ가 ㅕ에 가까운듯 하니 yo가 나을려나.

2. 또 'ㅡ'의 'eu' 표기도 때로 불편하다. 이 'eu'라는 字가 불어로는 peu(쁘), bleu(블르) feu(프) 등 'ㅡ'발음에 자주 近 하나 영어에서는 거의 안 쓰인다. 물론 英記가 아닌 롬記지마는 영어권에 居하는 자들에겐 불편함이 사실이다. 영어의 복합자음(이라고 하나?)이 국어에서는 字間에 'ㅡ'를 삽입하는 데에서(snake-스네이크, blue-블루) 난 발상인데, 역으로 'ㅡ'가 낀 국어字를 복합자음화하면 어떨까. 말하자면,

스님 -> seunim (x) snim (o)
글이 -> geuri (x) gri (o)
듯이 -> deusi (x) dsi (o)
들것 -> deulgeot (x) dlgeot (x)

물론 무결한 방안은 아니다. dlgeot처럼 자음 세 개가 병치되면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또한, sn나 gr는 괜찮지만 ds나 dl처럼 영어에서 복합자음으로 쓰이지 않는 자음병치도 발음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혹시나 해서 첨언하지만, 필자에게는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하다.

이름을 상형문자化해보자


우연히 佛文웹에서 재미있는 사이트를 발견.
기입한 이름을 발음대로 상형문자화해준다. (당연히 번역은 아니다)
위는 짙푸른(JITPRUN)을 입력한 결과.

泣夢 夢留記

우는 꿈을 꾸었다. 꿈을 詳說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覺中에는 잘 울 수 없다. 이는 물론 눈물을 흘림직한 까닭이 없어서이다. 虛淚를 삼킴이 장하도다.
꿈에서는 종종 각중에서는 스스로가 不許할 일를 하곤 한다. 각중 울었다면 自蔑했으리라.
스스로가 싫다.

韓人의 背後擊

匿名게시판에서 '한국인'으로 검색해 보았는데 저의 고등학교 한인 동창들은 모두 저의 등을 찔렀다며(stab in the back) 嫌韓感을 表하는者가 있었다.
한인에 대한 미국인의 인상은 말하자면 강한 相結性인저 '깨지길 바라는 연인錄'이라는 話頭에 '한국인과 PSP'라는 弄答이 달린 적도 있다.
背擊性이라함은 그러한 相集相結과도 無關치 않으려나.


直感

내 직감으로는, 우리가 자신의 직감을 덜 믿으면 세상의 무한 다툼이 激減할 것 같다.

음대생의 고로

익명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음대생들의 단문이 흥미롭다.

"Sometimes when I practice unproductivly I think about how my goal in life is to make a chunk of wood sound decent
Then I proceed feeling very stupid and oddly satisfyed"
"연습이 부진할 때 이따금 나는 내 인생의 목적이 나무 한 토막에서 적당한 소리가 나도록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가 매우 바보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만족스럽다고 느끼면서 연습을 계속한다"

"Sometimes I think about squeezing glasses in my hands till they break, so that I won't have to play anymore. 
-string player in the con."
"가끔 안경이 조각날 때까지 움켜쥐어 더이상 연주를 안 해도 되게 되는 일을 상상하곤 한다.
-음대의 현악가"

東亞漢字文化圈

이즈음 한자를 외국어視하려듦이 不可解하다고 느낀다.
非한자어를 순우리말이라 칭한다면 한자어는 不純우리말이게 되는가. (생각해보니 순우리말 자체도 '불순'하다는 점이 재미있다.)
문화의 국경이란 旣在했던 것인가. 혼합이 위대한 문명을 出産한 역사를 종종 읽는다. 하지만 지금의 국가는 스스로의 상징성을 格上하기 위해 자국 문화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경우에는 중국(과거의 문화대국)과는 그 차별성을 강조하고, 일본(지금의 문화대국)과는 그 元祖性을 강조하고, 월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서구문명'의 영향력은 각 국가가 저들의 기원을 헬라-라틴문명에서 共히 인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文化圈의 공유유산인 한자는 이와共히 생각될 수 있는가.


에야크의 宇宙


"가장 최근에 사라진 언어는 알래스카에서 쓰이는 '에야크(Eyak)'라는 언어로, 지난해 이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에야크語 최후의 독백을 마음에 그려본다. 바람. 눈. 태양. 사람. 친구. 사랑. 만물의 의미를 품은 하나의 우주가 이제는 단지 무의미한 지껄임. 내가 發散하는 의미는 共鳴치 않고 허공에 부딪치매 氣道를 타고 再歸한다. 깨닫는 것은, 한 마디의 독백일지라도 언제나 누군가에게의 부름이었음을.

에야크의 마지막 한마디는 우리 모두의 외로움과 같기에, 그 절대적인 고독을 나는 거듭 눈에 그린다.

老衰

근래 눈이 침침하여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그림이나 글이 약간 흐릿하게 보인다.
늙어 衰함은 예컨데 외국인에게 잘 모르는 언어로 수업받기와 비근한 경험이 아닌가하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불선명한 만화경같이 자신을 旋回하는 世人들이 자신에게 동정자然하려듦이 어쭙잖고도 슬프리라.

8/3

나는 내 자신을 너무 믿는 것 같다.
그러면 성장이 불가능하다.


8월 1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고 환영해주지도 않는 우리끼리의 기념일이지만 그래도 매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이다.

고교인생

고교인생

 나의 고교인생이 어느정도 끝났다. 나는 패배했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이것저것을 매듭지어갈 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신만이 알리라. 그런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나는 불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여주었고 어떤 결과에도 불평할 수 없다. 설령 3년 전과 같이 요행으로, 승리의 길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에게 패배한 것은 차이가 없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완패다. 그 결과의 파급력은 엄청난 것이지만, 이제와서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그 정도의 그릇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3년동안 진화했다. 천천히. 사회에 적합한 일꾼으로.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나의 패인은 다음과 같다.

 1. 게으른 것
 2. 밀지 않은 것(자신의 게으름을)
 3. 늦은 것
 4. 미룬 것
 5.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자신은 고결하다고 생각한 것
 6. 너무 많이 후회한 것
 7. 너무 적게 반성한 것
 8. 가식과 위선

 아직도 나는 이러한 죄의 씨앗을 품고 있다.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밀어야 한다. 순간순간 나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마치 팽이와 같아서 흔들릴 때 채찍으로 갈기지 않으면 곧 멈추어 버린다. 그러나 흔들리는 순간마다 적절히 쳐 주면 곧 마치 머리 위에 고요히 서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팽이가 된다. 나는 나태가 덮쳐올 때마다 그 나태를 밀어 치우지 않았고 결국에는 몇번이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나의 수련은 점진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패배이다.
 오늘 조금 좋은 일이 있었다. 나는 순간 기뻐질려고 했으나 곧 스스로를 차게 식혔다. 기쁨은 슬픔의 씨앗이다. 새옹의 지혜를 상시에 기억하자. 나는 단지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밀어 나갈 뿐이다.

 

나는 잘 지내

 
 'How are you?'에 대한 답은 언제나, 'I'm fine, thank you.'가 되어야 한다. 상대는 나의 고민이나 아픔 같은 것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가 그러한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덧없는 애정호소로, 해결책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환부를 자극할 뿐이다. 그러나, 'I'm fine'은 단순한 인사치례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굳건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진솔한 평상심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불행하다. 이것은 유아의 사고방식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성장한다는 것은 아픔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아닌, 아픔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잘 지낸다.'


운다는 것

 아아... 울고 싶다. 정말로 누구든지 상관없으니 위로받고 싶다. 밀밭의 허수아비처럼 지지대 없이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울어선 안 된다. 이것은 더러운 눈물이다. 마치 아이의 울음처럼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투정부리는 눈물이다. 나는 이러한 기분을 느낄 때 종종 혼자서 울어 보았다. 남는 건 허무였다. 그리고 알았다. 지금은 울어선 안 된다. 운다는 것은 지고한 행위이다. 그것은 종착점이다. 지금은 그저 의미 없는 곡에 불과하다.
 나는 종종 상상한다. 성공을 거둔 한 남자. 자아를 실현하고 세계를 위해 몸을 내던지며 뜨거운 삶을 살아간 그. 그의 삶에는 온갖 극적이고 감동적인 궤적들이 새겨져 있다. 좌절과 환희와 두려움과 우정과 이별과 그 모든 것이... 그 날 밤 그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느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한다. 모든 것이 미음(微音)에 파묻혀져 있는 보랏빛 밤. 차창 밖으로 그는 흘러가는 불빛들을 바라본다. 소리없이 차는 고속도로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집에 도착하자 두 천사같은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다. TV를 끄고 그는 지친 몸을 자리에 앉힌다. 아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늙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젊을 때와 다름없이 비치는 그의 반려자. 그를 이해하는 그의 영원한 동반자. 그가 사랑한 한 강인한 영혼. 둘이서 같이 간 길, 같이 겪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들... 아내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남자는 짙은 미광이 은은히 감싸는 한밤중의 방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운다. 조용히... 지고하게... 몸을 비틀지도 않고, 크게 울부짖지도 않고, 다만 운다. 혼자서... 그것은 가장 고귀한 진주처럼 방울지는 눈물이다. 이유는 없다. 다만 운다. 마치 울면서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울기 위해 살아온 것처럼.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비겁하다. 민폐에 불과하다.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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