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2일
행복으로부터의 탈주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살까? 그것에는 무엇이든 상품화하고 수치화하려는 우리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즉, 모든 경험이든 행복이라는 하나의 양적 수치로 환산화시킬 수 있는 것이며, 우리의 모든 경험은 그러한 수치를 최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 다양한 경험이라는 것도 단지 반복되는 행위가 가져오는 지루함을 달래서 더 많은 행복을 꾀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을 '좋아한다'라는 수식어는 기만적이다. 호오란 그렇게 이분법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것과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느낌일 수 있다. 심지어 바나나를 사과보다 더 좋아한다고 해도, 바나나가 사과를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허무하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면 음식이나 여색, 술담배나 약물이 가져오는 쾌락이 가장 지고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그것들은 절대로 100%의 만족을 주지 못한다. 행복이 만족이라면 왜 살아가는가? 불행의 근원인 이 삶을 아예 단절해버리는것이 더 현명하지 않은가? 행복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가?
행복은 단지 불행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배고픈 사람이 그 주림을 불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며, 무언가 달고 맛난 것을 먹으려는 그의 욕구는 행복으로의 질주가 아닌 불행으로부터의 탈주인 것이다. 이 둘은 차이가 있다.
내가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에 달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달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수치로 환산될 수 없는 고유한 경험인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행복이라는 이름의 불행에서 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좋아한다'라는 수식어는 기만적이다. 호오란 그렇게 이분법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것과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느낌일 수 있다. 심지어 바나나를 사과보다 더 좋아한다고 해도, 바나나가 사과를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허무하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면 음식이나 여색, 술담배나 약물이 가져오는 쾌락이 가장 지고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그것들은 절대로 100%의 만족을 주지 못한다. 행복이 만족이라면 왜 살아가는가? 불행의 근원인 이 삶을 아예 단절해버리는것이 더 현명하지 않은가? 행복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가?
행복은 단지 불행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배고픈 사람이 그 주림을 불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며, 무언가 달고 맛난 것을 먹으려는 그의 욕구는 행복으로의 질주가 아닌 불행으로부터의 탈주인 것이다. 이 둘은 차이가 있다.
내가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에 달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달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수치로 환산될 수 없는 고유한 경험인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행복이라는 이름의 불행에서 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by | 2008/06/12 02:38 | 트랙백 | 덧글(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