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맺기의 유형의 다양성

 사람들이 말하는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사람이 있다. 조금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관계맺기를 어려워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자신이 권력상 더 우월한 위치에 있을때(예: 교사, 상관 등)종종 그 소심한 사람들을 더 외향적이고 사교적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야심에 불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딱히 자신이 적극적이지 않더라도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꽤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성격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상대성에서 임시적으로 빚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말수가 적은 학생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던지. 홀로 떨어져 있는 사람을 억지로 사교회에 끌고 간다던지. 결과는 종종 절망적이거나 기만적이다. 그 비사교적인 아이들은 자신의 철의 성문을 끝끝내 열어주지 않으며 그런 문을 열어젖히려고 거듭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호의가 무시된 듯한 불쾌감을 느끼며 포기하기도 한다. 아니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근하게 된 것을 마치 자신의 노력에 의한 성과인양 착각하기도 한다.
 결과가 어느 쪽이든 그런 노력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불쾌하고 거슬린다. 자신은 나름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이고 마음만은 고맙지만 계속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베푼다면 그것은 이미 독선이다. 무엇보다 제일 기분이 언짢은 것은 자신이 무슨 자폐아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비유를 들지 않더라도 그러한 선의에는 이미 우월감과 계도욕이 짙게 깔려있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흔히 말하는 소심한 사람들은 단지 관계맺기의 유형이 다른 것 뿐이다.
 관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친구가 한 수십명 있고 인맥이 넓으면 그것이 좋은 관계인가? 술자리에 자주 참석하고 MT에 따라 나가면 그것이 좋은 관계인가? 그것은 수많은 유형의 관계 중 하나일 뿐이다. 말이 없는 사람들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끼는 것이다. 친구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사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고양이와 대화하고 자신과 대화하고 신과 대화하는 데에 시간을 더 보낸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를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말로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by 짙푸른 | 2008/06/17 21:04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jiprune.egloos.com/tb/49991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