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5일
안명
1. '20년 후에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이처럼 실없는 질문도 없는데 그것은 올바른 주어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20년 후의 나에게 물어봐야지, 지금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종종 학생들에게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하라는 식의 격언을 서슴치 않는 교사나 학부모들이 있다. 이것은 겉보기에 좋아 보일지 몰라도 기만적이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의 공부의 주된 목적은 그 목표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분될 수 없다. 이처럼 목표와 공부를 이분하는 것은 공부에서 성찰이라는 요소를 제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감내해야할 노동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나의 역사는 지금에서 시작해 지금에서 완결된다. 순간순간 태어나고 죽어갈 뿐이다.
2. 누구라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데 이것을 해결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성장의 일부이다. 세상에는 어떻게 힘을 쓰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그러한 열등감과 패배의식이 있다. 그런 고통까지 감싸안으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 역시 말할 수 없다.
3. 미래는 항상 원하는 대로 결말나지는 않고, 과거를 뒤돌아보면 항상 만족스럽지는 않다.
상상한 바가 틀리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미래에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상처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무섭기 때문이다.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피 엔딩도 없고, 짜여진 플롯도 없는, 무규칙하고 불특정한 운명이다.
안명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완성의 문제가 아니다. 미완성이 곧 완성이다. 안명하지 못하는 이러한 과거까지, 다 안명해야 한다.
# by | 2008/06/25 21:0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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