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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짙푸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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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안녕하세요</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03 Aug 2008 11:49:5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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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짙푸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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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안녕하세요</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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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8/3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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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나는 내 자신을 너무 믿는 것 같다.<br>그러면 성장이 불가능하다.</p>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Sun, 03 Aug 2008 11:49:50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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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8/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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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꼴에 개근은 하고 싶다고 결국 이런 방식으로 타협을 한다.<br>사실 내 자신도 이런 블로그라면 정말&nbsp;읽고 싶지 않다.<br>그러나 생각해 보면 굳이 매일 일정한 분량을 지킬 필요도 없을것 같다.<br>양쪽 다 읽기 귀찮은건 매한가지라면.<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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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Sat, 02 Aug 2008 14:53:18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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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8월 1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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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디지몬의 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날이다.<br>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고 환영해주지도 않는 우리끼리의 기념일이지만 그래도 매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이다.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Fri, 01 Aug 2008 11:50:43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고교인생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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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고교인생<br></p>&nbsp;나의 고교인생이 어느정도 끝났다. 나는 패배했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이것저것을 매듭지어갈 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신만이 알리라. 그런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나는 불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여주었고 어떤 결과에도 불평할 수 없다.&nbsp;설령 3년 전과 같이 요행으로, 승리의 길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에게 패배한 것은 차이가 없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완패다. 그 결과의 파급력은 엄청난 것이지만, 이제와서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그 정도의 그릇의&nbsp;인간이었던 것이다.<br>&nbsp;나는 3년동안 진화했다. 천천히. 사회에 적합한 일꾼으로.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나의 패인은 다음과 같다.<br><br>&nbsp;1. 게으른 것<br>&nbsp;2. 밀지 않은 것(자신의 게으름을)<br>&nbsp;3. 늦은 것<br>&nbsp;4. 미룬 것<br>&nbsp;5.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자신은 고결하다고 생각한 것<br>&nbsp;6. 너무 많이 후회한 것<br>&nbsp;7. 너무 적게 반성한 것<br>&nbsp;8. 가식과 위선<br><br>&nbsp;아직도 나는 이러한 죄의 씨앗을 품고 있다.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br>&nbsp;밀어야 한다. 순간순간 나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마치 팽이와 같아서 흔들릴 때 채찍으로 갈기지 않으면 곧 멈추어 버린다. 그러나 흔들리는 순간마다 적절히 쳐 주면 곧 마치 머리 위에 고요히 서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nbsp;팽이가 된다. 나는 나태가 덮쳐올 때마다 그 나태를 밀어 치우지 않았고 결국에는 몇번이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나의 수련은 점진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패배이다.<br>&nbsp;오늘 조금 좋은 일이 있었다. 나는 순간 기뻐질려고 했으나 곧 스스로를 차게 식혔다. 기쁨은 슬픔의 씨앗이다. 새옹의 지혜를 상시에 기억하자. 나는 단지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밀어 나갈 뿐이다.<br><br><p>&nbsp;</p><p>나는 잘 지내</p><p>&nbsp;<br>&nbsp;'How are you?'에 대한 답은 언제나, 'I'm fine, thank you.'가 되어야 한다. 상대는 나의 고민이나 아픔 같은 것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가 그러한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덧없는 애정호소로, 해결책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환부를 자극할 뿐이다. 그러나, 'I'm fine'은 단순한 인사치례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굳건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진솔한 평상심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불행하다. 이것은 유아의 사고방식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성장한다는 것은 아픔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아닌, 아픔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잘 지낸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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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Tue, 01 Jul 2008 09:21:57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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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운다는 것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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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left">&nbsp;아아... 울고 싶다. 정말로 누구든지 상관없으니 위로받고 싶다. 밀밭의 허수아비처럼 지지대 없이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는 기분이다.<br>&nbsp;그러나 울어선 안 된다. 이것은 더러운 눈물이다. 마치 아이의 울음처럼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투정부리는 눈물이다. 나는 이러한 기분을 느낄 때 종종 혼자서 울어 보았다. 남는 건 허무였다. 그리고 알았다. 지금은 울어선 안 된다. 운다는 것은 지고한 행위이다. 그것은 종착점이다. 지금은 그저 의미 없는 곡에 불과하다.<br>&nbsp;나는 종종 상상한다. 성공을 거둔 한 남자. 자아를 실현하고 세계를 위해 몸을 내던지며 뜨거운 삶을 살아간 그. 그의 삶에는 온갖 극적이고 감동적인 궤적들이 새겨져 있다. 좌절과 환희와 두려움과 우정과 이별과 그 모든 것이... 그 날 밤 그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느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한다. 모든 것이 미음(微音)에 파묻혀져 있는 보랏빛 밤. 차창 밖으로 그는 흘러가는 불빛들을 바라본다. 소리없이 차는 고속도로를 미끄러져 내려간다.<br>&nbsp;집에 도착하자 두 천사같은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다. TV를 끄고 그는 지친 몸을 자리에 앉힌다. 아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늙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젊을 때와 다름없이 비치는 그의 반려자. 그를 이해하는 그의 영원한 동반자. 그가 사랑한 한 강인한 영혼. 둘이서 같이 간 길, 같이 겪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들... 아내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남자는 짙은 미광이 은은히 감싸는 한밤중의 방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운다. 조용히... 지고하게... 몸을 비틀지도 않고, 크게 울부짖지도 않고, 다만 운다. 혼자서... 그것은 가장 고귀한 진주처럼 방울지는 눈물이다. 이유는 없다. 다만 운다. 마치 울면서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울기 위해 살아온 것처럼.<br>&nbsp;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비겁하다. 민폐에 불과하다. 적어도 지금은.</div>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Sun, 29 Jun 2008 12:10:44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책을 선정하는 문제에 관하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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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embed src="http://www.youtube.com/v/iOy1do6XSw0&amp;hl=ko"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br><br>&lt;ひとり上手&gt; -&nbsp;<span style="COLOR: #0033cc"><span style="COLOR: #000000">中島みゆき<br></span>&nbsp;</span><br><div style="TEXT-ALIGN: left">&nbsp;나는 어떤 주제에 몰입할 때마다 읽을 책을 선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nbsp;예를들어 최근에는 춘추전국에 관한 책이 필요했다. 그런데 중국 전체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많아도 고대사만 특별히 다룬 책은 별로 없었다. 결국 나는 어떤 책을 읽을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고심해야했는데 모든 책이 (나의 현재의 관심사에 비추어 볼 때)각자만의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책은 집필연도가 너무 오래전이라서 안되고, 어느 책은 고대사에 할애하는 부분이 너무 적어서 안되고... 마치 편집증처럼 나는 나의 목적에 부합하는 한 권의 책을 찾아 헤맸다. 어느 때에는 나의 이러한 집착이 성공적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에는 실패한다.&nbsp;<br>&nbsp;나의 이러한 집착에 나는 내가 품고 있는 미신 비슷한 지식관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된다. 내가 나의 목적과 완전히 일치하는 책을 갈구하는 이유는 내가 마음 어딘가에서 그 책을 소유하는 것을 나의 지식이 구체화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앎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그 실제적인 책이 되는 것이다. 내 두뇌는 마치 책을 담아두는 창고처럼 이미지화된다. <br>&nbsp;이런 미신은 나의 다급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벗어나야 한다. 작가들은 책을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내 목적에 부합하는 책이 언제나 존재할 수는 없다. 나는 나의 지식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단 한 권의 책에서 완전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책을 읽어가면서 그것을 종합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그 텍스트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은 나 자신의 주체적인 노력일수 밖에 없다. 좋고 나쁜 책의 가림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지나친 편식은 독이 된다.</div></div>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Sat, 28 Jun 2008 09:02:37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치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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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1.&nbsp;최근 치과에 다닌다. 죽을 맛이다.&nbsp;치료과정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그러나 고통스럽지 않다는 점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 항상 치료대에 누울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나는 여기에 쉬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벌을 받고 있다. 양치를 규칙적으로 하지 않은 벌. 단 것을 과식한 벌. 의사의 말을 미리미리 듣지 않은 것. 그로 인해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있다. 시간 낭비. 신체의 고통. 무엇보다 돈. 아, 돈!<br>&nbsp;나의 채찍질이 더 혹해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편하게 앉아 금니를 끼우지만 그것은 몽땅 나의 부모에게 청구된다. 나의 바보같음으로 인해 이런 타격을 입히게 되다니. 눈물이라도 쏟고 싶다.<br>&nbsp;아직 치료는 한참 남았다. 더욱 더 스스로를 비난하기를 원한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게. 그러나 사실 나는 어젯밤 양치를 하지 않았다. 오, 주여... (웃으면 안 되는데...)<br>&nbsp;2. 나는 애정결핍이다. 때문에 누군가가 나에게 애정을 나누어주면 나는 그것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또 두려워한다. 그것을 잃을까. 그래서 적절히 거리를 둔다. 그러나 그러한 거리 때문에 또다른 결핍이 생긴다. 결국 나는 애정문제에 있어서 결핍과 집착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다.<br>&nbsp;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동년배의 여성을 친구로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은 욕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누군가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내부적으로 금해버리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이 나온다. 친구라고 함은 가깝다는 것인데, 스스로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이미 나에게 노나준 애정 한 조각에 나는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정으로서 받아들인다면 좋을텐데.<br>&nbsp;누구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그러한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말은 쉽지. 나는 오늘도 새까맣고&nbsp;끈적거리는 리비도의 바다에서 무기력하게 부유하고 있다.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Fri, 27 Jun 2008 12:59:44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개미지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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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nbsp;내가 어렸을 때 개미지옥 아니면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던 것이 있었다. 일종의 놀이인데 일단 세&nbsp;명 정도가&nbsp;모여야 가능하다. 몇 놈은 모래밭에 앉아서 고사래손으로 열심히 구덩이를 판다. 몇 놈은 식수대로 가서 열심히 물을 나른다. 모래에 흡수되기 때문에 빨리빨리 날라야 한다. 계속 반복하면 웅덩이가 형성된다. 묘미가 여기에 있는데 질퍽한 모래로 여러 지형을 만들 수 있다. 호수도 만들 수 있고 계곡도 만들 수 있고 미로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개미 몇 마리를 빠트린다. 그럼 그 놈들이 열심히 발버둥치면서 헤엄(?)을 친다.<br>&nbsp;딱히 개미를 괴롭히고자 하는 새디스트적인 욕망이 있는 건 아니고 단지 소세계를 창조하는 재미가 있었을 따름이다. 개미는 그 나라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거주민이었다. 육상세계가 수중세계로 전환하는 그 기묘함. 뭍과 물을 가른 우리는&nbsp;완성된 세계에 감동해 탄식했다.&nbsp;'보기에 좋았노라.'<br>&nbsp;생명경시풍조를 낳는 잔혹한 유희라고&nbsp;생각될 여지도 있지만&nbsp;일면에는&nbsp;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nbsp;개미지옥 놀이는 근본적으로 창조의 놀이다.&nbsp;남아의 놀이문화에는 창조성이 너무 부족하다.&nbsp;싸우고 부수고 이기는 놀이는 많지만 정교하게 심혈을 기울여 아름답고 복잡한 것을 창조하는 섬세함은 찾아볼 수 없다. 인형의 집을 남아들에게서 앗아간 부모들 탓이다. 어떻게 보면 인형의 집보다 배로 낫다. 인형의 집은 말하자면 레토르트, 아이들이 새로 개발할 여백을 남겨놓지 않은 기성제품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을&nbsp;정복하는 훨씬 더 스릴있고 어려운 게임이다. <br>&nbsp;놀이가 전래되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 발상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근래에 똑같은 짓을 하는 아동들을 난 보았다. 비가 그친 후 아파트 9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모래밭에 수로를 파고 있었다. 내 때보다 스케일이 배로 거대했다. 부질없는 조물주 놀이에 열중하는 대여섯명의 아동. 개미를 띄웠는지는 모르겠다. 그정도 규모라면 개미도 뗏목이 필요할텐데.<br>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Thu, 26 Jun 2008 12:26:00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안명 ]]> </title>
		<link>http://jiprune.egloos.com/52678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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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nbsp;1. '20년 후에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br>&nbsp;이처럼 실없는 질문도 없는데 그것은 올바른 주어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20년 후의 나에게 물어봐야지, 지금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nbsp;종종 학생들에게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하라는 식의 격언을 서슴치 않는 교사나 학부모들이 있다. 이것은 겉보기에 좋아 보일지 몰라도 기만적이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의 공부의 주된 목적은 그 목표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분될 수 없다.&nbsp;이처럼 목표와 공부를 이분하는 것은 공부에서 성찰이라는 요소를 제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감내해야할 노동으로 전락시켜버린다.<br>&nbsp;나의 역사는 지금에서 시작해 지금에서 완결된다. 순간순간 태어나고 죽어갈 뿐이다.<br>&nbsp;2.&nbsp;누구라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데 이것을 해결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성장의 일부이다.&nbsp;세상에는 어떻게 힘을 쓰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그러한 열등감과 패배의식이 있다.&nbsp;그런 고통까지 감싸안으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nbsp;이것 역시 말할 수 없다.<br>&nbsp;3.&nbsp;미래는 항상 원하는 대로 결말나지는 않고, 과거를 뒤돌아보면 항상 만족스럽지는 않다.&nbsp;<br>&nbsp;상상한 바가 틀리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미래에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상처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nbsp;무섭기 때문이다. 미성숙하기 때문이다.&nbsp;이것은 해피 엔딩도 없고, 짜여진 플롯도 없는, 무규칙하고 불특정한 운명이다.<br>&nbsp;안명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nbsp;그러나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완성의 문제가 아니다.&nbsp;미완성이 곧 완성이다.&nbsp;안명하지 못하는 이러한 과거까지, 다 안명해야 한다.</p>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Wed, 25 Jun 2008 12:02:00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긍정적과 부정적 ]]> </title>
		<link>http://jiprune.egloos.com/52527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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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nbsp;토론에서 그 진행을 가장 원할하게 할 수 있는 마법의 구절 중 하나는 '~가 뭔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nbsp;어휘를 생각없이 사용한다. 그리고 그런 두리뭉실한 언어 위에 사상누각처럼 지어진 논리구조에 만족한다. 이것은 또한 소통에 있어서&nbsp;근본적인 장애물 중 하나로, 같은 단어를 서로 달리 이해하니 대화는 끊임없는 동어반복으로 전락한다.<br>&nbsp;대화에 방해가 되는 이러한 모호한 단어 중 대표적인 것이 둘 있다.&nbsp;긍정적과 부정적. 이 두 단어는&nbsp;호불호를 보여주는 것 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굳이 이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우리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모든 정보를 이 두 범주로 분류하고 만족해한다. 가령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의 취하는 결단은 긍정적이고 그것을 훼방놓는 적의 잔꾀는 부정적이다. 이러한 범주화는 우리가 더욱 자세히 텍스트를 해독하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면 이것은&nbsp;깊은 성찰이 요구되는&nbsp;분석의 영역을 유아의 사고방식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유아는 사물을 질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뿐이다. 유아의 눈으로 텍스트를 읽는 것은 쉬우나 공허하다. 또한 작가의 지성을&nbsp;모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정교히 설치해놓은 수많은 논리의 질곡을 건너뛴 채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로 이분시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br>&nbsp;긍정적과 부정적으로의 범주화는 어느 시점에서는 의미있는 방편일지도 모르나 그것 자체로는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p>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Tue, 24 Jun 2008 02:49:00 GMT</pubDate>
		<dc:creator>짙푸른</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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